한길사도 다가오는 봄과 꼭 어울리는, 나들이에 챙겨가기 좋은 신간들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곧 소식을 들려드릴 텐데요!
그에 앞서 오늘 소개해드릴 책들은 어쩌다 보니 분량도, 주제도 다소 무거운 책들이네요. (다섯 권의 쪽수 합을 구해보니 무려 2,772쪽이라는 사실...)🧱🧱
밥만 배불리 먹어도, 책상 앞에만 앉아도 졸음이 쏟아지는 '춘곤'의 계절에 벽돌책을 읽기란 쉽지 않은 도전일 수 있지요. 하지만 봄볕이 잘 드는 도서관 창가 자리 한 켠을 차지한 채 벽돌책 한 장 한 장을 읽어내려가는 풍경을 상상해보면 왠지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않나요?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꾸준히 읽어나가다보면 마지막 장에 도달하게 되는 벽돌책의 리듬이 더디지만 반드시 찾아오는 계절인 봄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벼워진 옷차림만큼이나 마음도 가벼워질 수 있는 뉴스가 하루빨리 들려오면 좋을 텐데요.😮💨 더디지만 반드시 찾아오겠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이 생겼나요? 읽어볼 만한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글항아리 출판사 신간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 개념을 설명하면서, ‘생각하기의 무능’이 아이히만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렌트의 분석은 사교적이고 친절한 독일인 아이히만 씨가 어떻게 600만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하나의 틀이 되었죠. 개인을 톱니바퀴 삼아 살인 기계를 가동하는 범죄적인 법과 국가, 어떤 끔찍한 일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집단 구성원들, 저항하지 않는 희생자들 앞에서 아이히만은 전체주의 체제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처럼 보이기도 해요.
한편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의 저자 베티나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이 능동적이고 영리한 학살자로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실천한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아렌트가 예루살렘 재판을 참관할 당시에 정리되지 않았던 기록들, 예를 들어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망명하며 예전 동료들과 나눈 대담 같은 기록을 정리해 분석한 결과입니다.
사실 아렌트의 저작 가운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일종의 ‘옆길’입니다. 아렌트의 강의 조교였던 제롬 콘은 악의 평범성에 대한 연구가 ‘아렌트 사상의 전체 궤적을 추적하는 작업의 장애물’이라고도 표현했죠. 『전체주의의 기원』 등에서 20세기 폭력정치를 탐구해온 아렌트에게 ‘아이히만 현상’은 어두운 시대가 낳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례였을지도 몰라요.
반면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이 남긴 수많은 기록을 파헤치면서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거짓으로 바꿔치기한 특출난 미치광이를 발견했죠. 환경이 중요하냐 본성이 중요하냐 하는 인간성에 대한 논쟁이 두 학자 사이에 다시 벌어진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폭력적인 두께로 다가오는 책이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검은 고딕 글자와 흰 배경, 묘하게 붉은 기가 도는 사진에서 나치 독일 삼색기가 연상되지 않나요? 21세기 버전 아이히만 주해서를 곁에 두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시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신간 소식
한길그레이트북스 193, 194
<인간의 유래 1,2>
“인간은 생물계의 가장 높은 정상에 있다는
자부심을 버려야 한다”
_찰스 다윈
『종의 기원』과 함께 다윈의 가장 중요한 저서로 손꼽히는 『인간의 유래』가 출간되었습니다.
1859년 출간한 『종의 기원』에서 찰스 다윈은 의도적으로 인간에 대해 언급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학계와 사회의 거센 반발을 예상했기 때문인데요. 그로부터 12년 뒤인 1871년, 다윈은 자신의 이론을 인간에게로 확장시킨 『인간의 유래』를 출판함으로써 다시 한번 세상에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등 '적자생존'에 관한 다윈의 논의를 발전시키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으려는 지속적인 시도가 보여주듯, 오늘날까지도 많은 생태학자 및 과학자, 사회학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찰스 다윈.
방대한 조사와 생물학적 논증으로 인간의 오만함에 경종을 울리는 다윈의 메시지를 원전으로 만나보세요!📚
일상과 사담
위니의 <카이로스> 독서모임 후기
안녕하세요, 위니🍯입니다. 저는 최근 독서모임에 초대를 받았어요. 바로 <카이로스> 독서모임이었는데요. 책의 편집자로서 독서모임에 초대받은 것은 처음이라서 잔뜩 긴장했어요. 😶
‘그 원고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편집자여야 한다’와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죠. 관련 내용을 배우고, 찾고, 비슷한 책을 읽고, 번역가 선생님과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온전한 이해를 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봐도 결국은 수렴해 나아가는 데 그쳐요.
책에는 정답이 없어요. 그러니까 온전한 이해라는 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가능하죠. 여러분과 함께 이해를 나눌 기회가 조금 더 많다면 기쁠 거예요. (저는 출판사에서 보기 드문 EXXX 편집자니까요!)
<카이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어제 모임을 갖고 난 이후 이 책을 더 좋아하게 됐거든요. 모임에서 <카이로스>의 제목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요. 어느 분께서 고대 그리스의 시간 구분인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를 언급해 주셨어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카이로스’는 주관적인 시간, ‘크로노스’는 객관적인 시간이에요. 이 책에서 ‘카이로스’는 단순히 지나가 버리면 붙잡을 수 없는 기회와 행운의 신으로 설명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하게 되더라고요. 여러분은 이 제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결국 이 책은 ‘실패’에 대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소설이기도 하죠.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실패에 대해서 생각해요. 쓸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멈출 수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