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TENTS 📌
COVER STORY I 두 번째 달, 두 번째 시작
일상과 사담 I 편집자 티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개정판 작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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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두 번째 달, 두 번째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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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님!
2월의 첫 레터로 인사를 드리는 곰곰입니다.🐻
지난 레터에서 새해 목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렸죠. 구체적 리스트 대신 지향하는 키워드를 정해보기! 님만의 키워드에 따라 1월을 잘 마무리하셨나요? 아쉬움 남는 첫 달이었대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고, '두 번째 새해'라고 할 수 있는 설 연휴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아쉬움 남는 지난날은 접어두고 부푼 마음으로 연휴를 기다려봅니다.
사실 연휴 전후로 저희는 꽤 바쁠 것 같습니다... 회사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그리고 2024년 12월의 사태를 목격하며 많은 분들이 호명해주신 저희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개정판 출간을 앞두고 여러 작업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한길사의 오랜 숙원사업(?)과도 같았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개정판 작업은 티노님이 맡아주셨는데요. 그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오늘 들려주신다고 합니다.
아이히만 개정판 출간도, 관련해 들려드릴 다양한 소식에도 많은 기대 부탁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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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사담
편집자 티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개정판 작업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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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친위대 소속 아돌프 아이히만 중령은 유대인 학살의 핵심 인물입니다. 유대인 학살 계획과 병참을 책임지면서, 유대인 600만 명을 집결시켜 죽음의 수용소로 몰아넣었죠. 패전 후 도망친 아이히만이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비밀요원들에게 납치당해 예루살렘으로 끌려왔습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겨우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재판을 참관하러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2006년에 한국에 처음 번역되었어요. 역자인 김선욱 선생님이 뉴욕에서 아렌트를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길사에 전화해 출간을 요청하셨다고 하고요. 한나 아렌트 탄생 100주년에 맞춰 나온 1판은 지금까지 52쇄, 약 11만 부가 판매되었습니다. 오래 사랑받은 책이지만, 늘 따라다닌 평판도 있습니다. 번역이 엉망이라고요.
김선욱 선생님은 당시 ‘미국물’이 덜 빠진 상태로 번역했다고 말하시더라고요. 마침표와 쉼표 개수를 원서와 똑같이 맞추려고 하셨다나요. 번역이 악명을 떨치는 것에 비해 초반부가 썩 괜찮은데, 후반부로 가면 읽기 어려워집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원서를 직역한 제1판에도 그만의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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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쌓은 악명이 번역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렌트는 서른다섯에 미국으로 망명했고, 그때부터 영어를 사용했어요. 영어로 글을 쓸 때마다 비서에게 검사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독일어 화자 특유의 무시무시하게 긴 문장에 미숙한 영어 솜씨가 합쳐져 독자에게도 역자에게도 골치 아픈 책이 되었죠.
더군다나 이 책은 일반 독자를 위한 잡지 연재물이었어요. 『뉴요커』 독자들을 고려해 쉽게 써줬으면 고마웠겠지만, 글은 도리어 어려워졌습니다. 아렌트는 빈정대는 말투로 아이히만을 신나게 조롱하면서 두서없이 글을 썼거든요. 독자가 문맥을 놓치는 순간 갑자기 튀어나오는 반어법에 걸려 넘어집니다.
기존 번역에서 오류를 지적해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개인 블로그에 게시물 예닐곱 개를 연달아 올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분석하신 분도 있고, 인물과 도시 이름에서 오류를 찾아내 지적해주신 분도 계시고요. 1장에서 나오는 서독이 이스라엘에 보낸 배상금이 737만 달러가 아닌 것 같다고 전화해주신 분도 떠오르네요. 네. 7억 3700만 달러였습니다. 모두 감사드려요.
아렌트 책이라고는 이 책밖에 읽어본 적이 없던 티노에게 전면개정판 작업이 돌아왔어요. 2023년 5월이었죠. 책상에 남은 건 한길그레이트북스 아렌트 책 몇 권과 윤은주 선생님의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기』 한 권이었습니다. 다행히 김선욱 선생님이 끝까지 적극적으로 재번역을 끌고 나가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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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기』, 윤은주 지음, 세창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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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통화 이후 합의한 교정의 제1원칙은 ‘과감하게 손대기’였습니다. 교정지 위에서 말끔하게 고치는 방식이 아니라, 한글 파일로 여러 차례 주고받으면서 큰 구조부터 바꾸기로 했죠. 이 자극적인 글이 왜 지루하고 읽기 힘든지를 생각해봤는데, 문장이 너무 길더라고요.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넘어가고, 한 문단은 몇 페이지씩 이어져서, 읽다가 숨넘어가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면개정판에서는 문장을 문맥에 맞춰 많이 쪼갰습니다. 직접인용문은 가능한 한 대화처럼 읽히게 손봤어요. 그래도 원서 문단 경계는 조금 다른 마침표로 표시해뒀습니다.
다음으로 문제가 된 건 인물명과 지명이었어요. 세계대전이나 나치 독일에 관심이 있다면 익숙하겠지만, 이 책은 모두를 위한 교양서잖아요. 각주를 좀더 풍성하게 달았습니다. 화보에 사진도 더 담고, 지도도 넣었어요. TMI가 아닌가 고민하다가 그냥 넣기로 했어요. 재판 당시 사진과 동영상을 찾아보니 선명하고 감정 하나하나를 너무 잘 잡아놔서 놀랐습니다. 결과적으로 페이지가 늘었어요. 기존 424쪽에서 88쪽 늘어난 512쪽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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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재판에서 공소유지검사로 나선 기드온 하우스너 검찰총장.
팔짱을 끼고 표독한 눈초리로 아이히만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아래 손가락으로 입술을 문지르는 사람은
아이히만의 변호사 로베르트 세르바티우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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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선생님이 은퇴를 앞두고 한국철학회 회장을 맡는 등 바쁘셨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덕분에 편집자 입장에서 일정이 여유로웠어요. 작업이 멈춰 있던 작년 초에는 글항아리에서 베티나 슈탕네트의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이 번역돼 교차서평을 쓰기도 했죠. 교정 중에 잠깐 멈추고 나중에 다시 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아무튼, 전면개정판 출간까지 2년 반이 걸렸군요. 책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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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베티나 슈탕네트 지음, 이동기·이재규 옮김, 글항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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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뒤표지에 담아놨어요. 원래 뒤표지에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요. 이데올로기니 병리학이니 판단 규칙이니, 이 책을 처음 집어 드는 분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바꿨습니다. 아래는 새로 담은 글입니다. 제8장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 의무’의 마지막 부분이에요.
“당신들처럼 존경받는 장성들이 어떻게 그처럼 무조건적 충성심으로 살인자에게 계속 봉사할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한 장성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자신의 최고 사령관을 판단하는 행위는 군인의 의무가 아닙니다. 그 일은 역사가나 하늘에 있는 신이 할 일입니다.”
많은 독일인과 많은 나치, 그들의 절대다수는 유대인들이 죽음의 장소로 이송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들 중 다수는 끔찍한 세부 사항을 잘 알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그들은 살인하지 않으려는,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자기 이웃을 죽음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익을 취하여 이 모든 범죄의 공범자가 되지 않으려는 유혹을 분명히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맙소사, 그들은 유혹에 저항하는 법을 배워버렸다.
2024년 12월 3일이 떠오르지 않나요? 사실 1판은 50쇄까지만 찍고, 전면개정판도 50쇄까지 가자! 하는 계획이었는데, 비상계엄 이후 책이 너무 잘 팔려서 52쇄까지 인쇄했어요. 참고로 뉴스레터를 쓰는 오늘 52쇄 재고가 동났습니다. 전면개정판이 제책을 마치고 서점에서 판매되기까지 3주는 기다려야 할 테니, 서점 재고가 동나면 한동안은 품절이겠군요. 당분간은 서가에서 이 책이 잠깐 사라져 있겠습니다. 다시 돌아올 때는 더 좋은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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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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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레터 어떠셨어요?
다음 레터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나
부족한 점을 함께 적어주시면
곰곰🐻 위니🍯 티노🦖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비블리오테카는 격주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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