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집』은 칸트전집에서도 조금 예외적인 책입니다. 베를린 학술원에서 총정리한 칸트의 저작은 네 개 부로 나뉘어 있는데, 서한은 그중 한 부를 통째로 차지하는 방대한 자료거든요. 지금까지 확인된 서한이 900편이 넘는데, 그걸 모두 번역하려면 서한집만으로 전집이 따로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서한 중 153편을 선별해 번역했습니다. 구성과 번역은 한국칸트학회 회장과 서양근대철학회 회장을 지낸 맹주만 선생님, 그리고 김형주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칸트 연구에서는 서한집이 크게 다뤄지지만, 정작 임마누엘 칸트 본인은 자기 편지가 공개되길 바라지 않은 모양이에요. 동료 철학자인 모제스 멘델스존이 죽었을 때, 망자가 생전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책을 내려고 하자 칸트는 자기 편지가 있다면 다 버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칸트의 생전에는 사생활 공개를 피해달라는 부탁이 잘 지켜졌지만, 칸트가 죽자 주변인들은 곧장 편지들을 모아 출판을 준비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으로 이어졌고요.
읽을 가치가 있는 편지들만 뽑았습니다. 당대 독일 철학자들 사이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고, 비판철학 책들이 기획되는 과정과 출간 당시의 반응도 엿볼 수 있습니다. 칸트라고 마냥 시계추 같은 사람은 아니었는지, 동생의 편지에 답장을 늦게 써서 타박받는 등 인간적인 모습도 담겼습니다. 칸트전집 나머지 책들에 비하면 아주아주 가벼운 책이라서, 칸트에 관심이 있다면 부담 없이 읽을 만해요.
칸트전집은 열다섯 권에 달하는 만큼, 전체를 관통하는 규칙과 형식이 먼저 서 있습니다. 담당 교정자가 있고 담당 검수자가 있어요. 티노는 작업 조율과 마무리만 맡는데, 이 책에서는 그 과정이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칸트전집 책들과 달리 발췌 번역이라서 해제와 각주 형식을 어떻게 할지 옮긴이도 검수자도 저도 고민이 많았는데요, 세세한 내용까지 파고들어 조율이 길어지면서 작년에 내야 했던 책이 이제야 나온 거거든요.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에요. 전집 완간까지는 이제 세 권이 남았네요. 올해 다 마무리될 것도 같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