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본격적으로 녹음이 푸르러지고, 진이 빠질 정도의 더위가 찾아오기 직전인 5월부터 6월을 가장 좋아합니다. 추위에 몸을 웅크리지도, 흐르는 땀에 불쾌해 하지도 않으며 오래 걸을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인데요. 아마 제 열두 달 걸음수의 총량을 잰다면 이 두 달 동안의 지분이 월등히 높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5월 한 달 동안 동네 산책로를, 회사 근처를 거닐며 마주친 풍경들을 님께도 나누어요.
첫 번째 사진 속 고양이는 이웃 건물에 터를 잡고 지내는 아이입니다. 숨숨집과 사료 그릇 등이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해당 사무실 분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듯한데요. 주로 형제로 추정되는 다른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목격되는데, 출근길 건물 앞을 지나가면 저렇게 하품을 하며 나타나 발걸음을 붙들어 매곤 합니다.
두 번째 사진 속 강아지는 카페 페이지온의 폴로!입니다. 지난 레터에서도 소개해드렸었는데 기억 하실까요. (페이지원이 아닌 페이지온입니다! 카페 이름을 잘못 알려드렸어요.🥲)
교보문고 본사에 다녀오는 길, 혼자 햇볕을 쬐고 있던 폴로를 만났습니다.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던 풍경...
"개 한마리가 길 한가운데 가로누워 있는데 길 자체,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사랑했다.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 거의 모든 것을 매 순간 나는 뜨겁게 사랑했다."
_로베르트 발저, 『산책』 17p 중에서
거리에 만개한 꽃들도 이맘때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생김새도 예쁘고 향이 좋아 검색해본 흰 꽃은 찔레꽃이라고 하네요.(출처: 제미나이) 이름은 친숙했지만 막상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찔레꽃이 장미과에 속한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어요.
고작 10분짜리 영상을 보는 동안에도 빨리감기 버튼을 누르고, '요약본'으로 시간과 정보 습득의 단축을 추구하게 되는 세상이지만 산책을 하는 동안에는 이 모든 조급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정해진 도착지도, 도착시간도 없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 감각 속에서 걷다 보면 엉킨 실타래같던 머릿속도 자연스레 정리가 되고요. 부정적 감정에 오래 시달렸거나 생각을 정리하고픈 날에는 더욱 멀리까지, 오래 걷게 되는데요.
"산책을 하면서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낯선 생각 역시 나 자신 속에 위치할 자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_장 자크 루소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곱씹으며 홀로 오래 걸어본 적 있는 분들께 권해드리고픈 고전이 있습니다. 삶의 종착점에 다다른 루소의 사유들을 엮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입니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한길사
"매일 계속되는 내 산책은 곧잘 달콤한 명상들로 가득 하곤 했지만, 안타깝게도 기억해낼 수가 없다. 다시 시작하게 될 내 명상들에 대해서는 이제 글로 남겨놓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읽을 때마다 내게 큰 즐거움을 되돌려주리라. 내 마음의 참된 가치를 생각하며 나는 내 불행과 나를 박해했던 사람들, 그리고 내가 받은 치욕을 잊으리라"(32p)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사회계약론』 발표 이후, 루소는 국회의 탄압과 동시대 지식인들의 거센 비난을 받으며 혹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서들은 발행이 금지되었고, 프랑스를 떠나 도피 생활을 해야 했는데요.
루소는 산책을 하며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이해하고, 그 운명을 순응하며 내면의 평정을 되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유의 과정을 글로 기록했는데요. 그는 자연 속에서 걸으며 "진정한 행복의 원천은 우리 자신 속에 있으므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은 결코 타인들에 의해 불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갔습니다.
루소가 초연한 어조로 삶을 정리한 문장들을 읽다 보면 연결이 촘촘해질수록 커지던 공허와 고독의 경험, 외부 자극에 지쳐 '무해함'만을 갈망하게 된 우리의 초상을 마주치게 됩니다. 열 번의 산책을 거치며 루소가 길어올린 진정한 행복에 관한 사유들을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만나보세요.
재입고 소식
『괴테와 융』
괴테 『파우스트』를 분석심리학적으로 해설하다!
한국 분석심리학의 대가 이부영의 『괴테와 융』이 무선제본 보급판으로 재출간되었습니다.
파우스트가 마귀에게 영혼을 팔아 초능력을 발휘하다가 타락해 지옥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괴테 이전에도 여러 번 소설화되었지만, 그는 이 소재를 취해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했습니다. 지식의 한계에서 절망에 빠졌다가도 끊임없이 일어나 삶에 도전하며, 실수와 상처투성이인 지옥행을 겪으면서도 다시 영원한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고, 지상 세계의 번영을 위해 행동하는 인물로 파우스트를 재탄생시켰지요.
한국 분석심리학의 대가 이부영은 『괴테와 융』을 통해 『파우스트』를 인간 무의식의 원초적·집단적 표상과 융의 원형적 상징을 읽어낼 수 있는 텍스트로 해설합니다. 파우스트의 여정은 단순한 문학 서사가 아니라 인간 정신이 자기실현을 향해 움직이는 상징적 경로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